다른 건물 베낀 짝퉁건물, 법원 "아예 철거하라"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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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물 베낀 짝퉁건물, 법원 "아예 철거하라" 첫 판결
  • 이혜경 기자
  • 승인 2023.09.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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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 동해안로의 한 카페

 

법원이 국내 건축계 표절 논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렸다. 4년 가까이 이어진 ‘부산 웨이브온 표절 공방’에서 “울산 A카페가 부산 웨이브온의 건축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원고 측인 곽희수 건축가의 손을 들어줬다. 피고에게는 “건물을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국내 건축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건축물 철거 명령’이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부산 웨이브온 표절 논란’은 지난 2019년 7월 시작됐다. 2016년 12월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세워진 카페 웨이브온과 똑 닮은 카페가 울산 북구 동해안로에 지어지면서다. 소셜미디어에서 “짝퉁 웨이브온”으로 불릴 정도다.

두 건물은 바닷가에 접한 입지는 물론 외관도 닮은꼴이다. 두 덩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비틀어 쌓은 형태를 갖췄고 연면적(약 490㎡)과 높이(11~12m), 규모(지상 3층)가 모두 비슷하다.

내부 인테리어도 판박이다. 1~3층엔 가운데가 뻥 뚫린 ‘오픈 스페이스’ 형태의 중앙 계단이 배치됐다. 게다가 웨이브온은 ‘서울 고소영 빌딩’(테티스), ‘강원도 정선 원빈 집’(42nd 루트하우스)을 설계한 곽희수 건축가(이뎀건축사사무소 소장)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17년 세계건축상(WA),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 작품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재판장 박태일)는 18일 “피고인 A카페의 건축사사무소가 원고인 이뎀건축사사무소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고, 건물을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리우의 정경석 변호사는 “건물은 서적·음반과 달라 폐기가 쉽지 않은데, 철거 청구까지 인용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건물 철거에 대해선 “웨이브온을 무단으로 복제한 건물이 이뎀건축사의 전시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이유를 들었다. 창작성에 기여하는 내·외부의 세부 조형까지 유사해, A카페에서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부분만 따로 떼어 폐기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건축계에선 이번 판결이 향후 건축물 설계 관행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장(경기대 교수)은 “그동안 건물 표절이 생기면 경제적 배상, 사과문 게재 정도로 마무리됐는데, 이번 판결은 건축 저작권 표절 논란에 경종을 울린 승소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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